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샤르트르)
인생은 완전히 성공할 수도 없고 실패할 수도 없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의도와 목적이 된다. 무엇을 달성하고 싶고 얼마나 달성했는가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회사가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해당 기간 동안 매출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면 되고, 주식이 성공했는지는 내가 목표한 수익률을 초과하였는지 확인하면 된다.
의도와 목적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의도와 목적을 갖고 태어나는 걔 아니라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건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다. 딱 그저 세상에 우연히 던져져서 존재하게 되었을 뿐, 태생적으로 달성할 목표가 애초에 없다면 말이다. 의도와 목적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의도와 목적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건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다. 딱 그저 세상에 우연히 던져져 져서 존재하게 되었을 뿐 태생적으로 달성할 목표가 애초에 없다면 말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표현에서 실존은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서 실존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 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식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건 역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은 의도와 목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내가 누구이고 이 세상에 있는 지를 묻는다면 의도와 목적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어떤 목적으로 태어났고 무슨 의도로 태어났는지 말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의 의자는 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테이블은 음식이나 어떤 물건을 위에다가 놓기 위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 제작되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서비스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기능과 의도 목표를 갖고 개발되었다. 딱 이렇게 서비스나 사물들은 제작하고 개발하게 된 의도와 목적 즉 본질이 먼저 있고, 존재는 그다음 이야기가 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의도와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직장인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갑자기 세상에 있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 바라봤을 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정의가 될 수 없는 무언가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무언가가 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본질이라고 정의되는 무언가를 항상 앞서게 된다. 물론 진화론적 입장에서는 인간은 종족 번식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과 개개인으로 봤을 때 진화론적 입장에서 이야기한 주장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이나 상황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인간이 다양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다는 건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특정한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다면 반대로 무엇이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각자가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회사에 지원할지 선택할 수 있다. 퇴근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 아침에 언제 일어날지 시간을 정한다. 유튜브에서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영상들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철학을 시청하는 사람, 먹방을 보는 사람, 여행 관련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 음악과 댄스 관련 영상을 보는 사람 등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앞에 놓여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만 해도 과거에는 공중파 방송밖에 없었지만 종편뿐만 아니라 다양한 OTT가 선택받기를 기다린다.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선택해야 할 선택지의 분량이 몇십 배는 늘어났을 것이고 그래서 삶이 더 피곤해지지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나는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와서 나와 이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그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갖게 해 준다. 불안이라는 속성은 과거와 미래 때문에 발생한다. 과거에 부정적인 경험이 현재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떠올라 우리를 일차적으로 괴롭힌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올라온다.
결론적으로 이차적으로 감정을 건드려서 선택의 자유는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선택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은 단순히 행동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세상에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일어날 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느낌까지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무 여하고 아름답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는 그저 반짝이는 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고 값을 매기기로 선택하는 순간 다이아몬드는 보석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인생 반전을 위한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다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현재 감정이 불안해서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샤르트르의 사상과 생각들도 그의 주장처럼 삶을 살면서 하나하나 만들어졌다. 철학과 모든 인간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샤르트르의 사상도 그의 시대상과 인생 그리고 깊은 사유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도 처음부터 인간이 의도와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얹혀 살았다. 외가는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항상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라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야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희미한 존재감을 느끼면서 자랐다. 사르트르는 그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사르트가 읽고 쓰고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낭독하면 찬사를 보냈다. 어른들의 칭찬을 사르트르는 존재 증명서라고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의 안정을 통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글쓰기를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었고, 자신을 곧 글쓰기로 동일시했다. 하지만 성인으로 전하면서 샤르트르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스스로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던 글쓰기 이외에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샤르트르는 자신이 배우고 주장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가치한 것인가라는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전쟁은 샤르트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샤르트르는 세계대전 참전 중 포로로 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다. 그에게 있어서 실존의 문제는 이런 사건들로 인하여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전쟁은 사는가 죽는가에 대한 문제를 인간이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본질과 연관된 질문 보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생각들을 더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학살하는 참상을 목격한 샤르트르는 더 이상 글쓰기가 전부인 삶을 살지 않았다. 사회 정치에 대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부정과 불의를 외면하는 것은 지식인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샤르트르는 나의 행동과 선택들이 나의 삶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글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고 집을 지으면 건축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생각에 남긴 [존재와 무]를 1945년 발표하게 되었다. 즉, 인간이 먼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인간이 무엇으로 정의가 되는 것은 그 다음이 된다는 생각을 말했다. 인간은 목적이 분명한 사물과 다르게 먼저 존재하고 스스로가 그 본질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샤르트르의 생각은 우리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니까 세상이라는 큰 틀에 존재하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나갈 수 있다. 샤르트의 논리를 활용하면 인생에서 완전한 성공과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과 실패는 인간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해서 만든 것들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 그 자체다. 그래서 타인은 두 번째로 중요한 존재가 된다. 나를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인생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성공과 실패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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